AI를 비롯한 과학 기술이 발달한 근미래의 일본. 그렇지만 10년에 한 번씩 찾아온다는 대지진에 분위기는 왠지 디스토피아에 가까워보이는데요. 불안감은 만성이 된 지 오래, 경찰이 음악 클럽을 단속하고, 길거리에서도 불시검문을 하는 회색 도시입니다.

학교라고 사정이 다르진 않아요. 접대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교장, 게다가 불의에 반발하는 사람도 딱히 없어 보이죠.

유타와 코우는 이 시대를 사는 고등학생입니다. 그들은 아타, 밍, 톰과 동아리 음악연구회 활동을 하며, 절묘하게도 테크노 음악을 들으며 답답한 세상을 잠시나마 잊곤 하죠. 꼰대들을 피해 마냥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이들에게도 점점 변화가 생깁니다.

지진으로 인한 불안함이 커질수록 국가는 약자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고 이런 분위기는 학교 안까지 번집니다. 나라가, 학교가 정한 기준에서 벗어나는 학생들을 AI로 감시하고 처벌하기에 이러요.

<해피엔드>는 이들이 사는 사회와 이 학교를 꽤 명확하게 대칭시킵니다. 지진을 기점으로 일본 총리가 전체주의적 통치를 강화하고, 학생들이 차에 장난을 친 사건을 기점으로 교장이 파놉티라는 AI 감시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처럼요. 영화적 과장이 섞였지만 영화를 보고 나온 뒤, 우리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느껴졌어요.

이렇듯 영화 <해피엔드>는 다분히 정치적이고 노골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피엔드>를 단순 정치 영화라고 정의하긴 어려울 거예요. 여기엔 모두가 공감할 만한 학창 시절, 그때만 느낄 수 있는 관계와 감정이 가득 들어있으니까요.

유타와 코우를 비롯한 음악연구회 친구들은 낮이고 밤이고 언제 어디서나 함께합니다. 동아리 활동을 빌미로 마음껏 음악을 듣는 것부터 반사회적 일탈까지, 좋고 나쁜 순간들을 대부분 함께 했죠.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고 점점 함께할 수 없는 일들이 생깁니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말이에요.

님도 시절인연이라는 말을 아시나요? 시절인연은 모든 사물이 때와 인연이 맞아떨어져서 일어난다는 의미의 불교 용어인데요. 살다 보면 같은 것을 보고 같은 행복을 느끼던 존재가 더 이상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게 되고, 상대가 변해서, 변하지 않아서 인연이 다 하기도 하죠. <해피엔드>에는 인생에서 처음 시절인연을 마주한 순간들이 담겨있습니다.

살몬은 이동진 평론가가 <토이 스토리 3>에 남긴 한줄평을 참 좋아하는데요.

"이별의 순간이 왔다고 해서 꼭 누군가의 마음이 변질되었기 때문인 건 아니다. 어떤 이별은 그저 그들 사이에 시간이 흘러갔기 때문에 찾아온다."

한때 나를 아프게 했던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오르는 말 같아요.

살몬에게 <해피엔드>는 서사보다 구조가 특히 인상 깊었어요. 이야기가 밋밋하게 느껴질 때면 오히려 프레임 속 공간과 인물 배치, 조명의 질감, 음악의 호흡에 몰입하게 되었거든요. 잘 지어진 건축물을 보는 것 같았달까요?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육교, 옥상, 다리 밑처럼 도시의 거대 구조물들이 스쳐 지나갈 때였어요. 네오 소라 감독은 큰 구조물을 통해 억압받는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했지만, 살몬은 오히려 그 구조물들이 무너질 듯 위태로운 세계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단단함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영화 <해피엔드>는 거의 일본 고베에서 촬영했다는 사실!

살몬은 다음 고베~오사카 여행 코스로 꼭꼭꼭 들리려고요, 남몰래 모아둔 구글맵 위치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