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망진 유채꽃이 피었습니다

2025. 3. 13.

🥗 요망진 유채꽃이 피었습니다

이 메일이 잘 안보이시나요?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
연출 김원석

극본 임상춘

출연 아이유, 박보검, 문소리, 박해준 외

바로보기 넷플릭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던 고등학교 시절의 어느 날이 떠올라요. 흐드러지게 핀 유채꽃이 제주도의 거센 바람에 흔들거렸는데, 눈이 부실 정도로 따스한 색을 내뿜는 풍경과는 달리 너무 추워서 한껏 웅크릴 수밖에 없었죠. 그날의 느낌은 왜인지 쓸쓸한 감정으로 남아있답니다. 님의 첫 제주도는 어떤 식으로 기억되고 있나요? 그날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 본다면 어떻게 달라져있나요. 이 시간까지 잘 살아낸 우리 모두, 폭싹 속았수다.

🎉 제주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도 사투리로 ‘매우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의미라고 해요.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매우 수고한 우리의 인생을 담고 있죠. 정확히는 할머니, 큰이모, 엄마의 삶을 담고 있다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1960년대부터 2025년 현재까지 ‘애순’이가 어떻게 살아냈는지를 사계절로 나눠 보여줘요. 드라마는 애순이의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작합니다. 애순은 엄마가 아닌 작은 아버지 집에서 할머니와 살아요.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엄마는 재혼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작은 아버지는 자신들의 식구만 챙기지 조기를 살 때에도 애순이의 것은 없습니다. 먹는 걸로 차별하는 게 제일 섭섭한데 매우 쪼잔합니다. 그런 애순의 곁에는 조기를 갖다주는 감자 같은 남자, ‘양관식’이 있죠.

양. 관. 식이 애순의 인생에 있습니다. 애순의 엄마가 돌아가시고 졸지에 이부동생 둘을 책임져야 했던 애순은 여전히 시인이 되기를 꿈꿉니다. 양관식은 노스탤지어는 무엇인지 모르지만, 애순이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합니다. 애순과 함께 양배추 농사를 짓고 팔아주면서요. 애순의 목표인 대학 입학과 시인 등단을 향해 두 사람은 같이 걸어가죠. 물론, 애순과 양관식은 아름다운 묘사 아래, 시린 내용의 시를 써 내려갑니다. 그들이 바라보는 제주도처럼요.

🔊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4화까지 진행된 <폭싹 속았수다>는 지금까지 이런 아우성을 외칩니다. 어디서도 기죽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살아라 딸들아!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 바다로 나가 돈을 벌어 세 자식을 키워야 했던 애순의 엄마는 딸 애순만큼은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잠녀, 즉 해녀였던 애순의 엄마는 애순에게 직업을 물려줄 생각이 전혀 없죠. 작은 아버지 집에서 조기도 못 얻어먹는 딸의 속상한 마음을 알게 되고는 악에 받쳐 조기를 잔뜩 사들고 들이 박기도 합니다. 양관식은 조용히 애순의 곁을 지킨다면, 엄마는 참지 않고 아우성을 칩니다. 역시 엄마는 건드려선 안 됩니다.

이런 엄마의 등장이 <폭싹 속았수다>에서는 더욱 반갑게 느껴져요. 시대 배경이 1960년대인 걸 생각하면, 애순의 엄마 ‘광례’는 진보적이죠. 딸이라고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하려고 하거나 학교를 그만두거나 하는 일을 전혀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 시대에도 시인이 되고 싶어 하는 딸의 꿈을 응원하죠. 그래서 이런 엄마를 보고 자란 애순은 기죽지 않아요. 절대로요. 일련의 사건으로 대학 입학도 시인이라는 꿈도 이루지 못했지만 딱 하나, 엄마가 그토록 바라던 일은 지킵니다. 잠녀도, 식모살이도 하지 말아라. 그리고 애순은 자신과 꼭 닮은 딸을 낳게 되죠.

딸이 딸을 낳고 또 그 딸이 딸을 낳는. <폭싹 속았수다>는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여성들을 이야기합니다. 보다 보면, 자신들은 쉴 새 없이 부엌에서 움직이지만 에디터 네즈만큼은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게 하겠다는 굳은 의지의 할머니, 엄마, 이모들이 자꾸만 떠오르게 되죠. 그들은 어떤 삶을 꿈꿨을까요. 애순이처럼 시인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알맹이 없는 시대극

앞서 설명한 것처럼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아름다운 서사를 제주도라는 배경으로 풀어내요. 공감도 되고 분명히 눈물이 나는 포인트도 있죠. 하지만 아쉽다는 평도 많이 있습니다. 1960년대 그리고 그 이후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시대에 대한 해석과 제주도라는 배경에 관한 어떤 특이성도 담아내지 못하고 있죠. 전라도 사투리와 서울말이 섞여버린 어색한 제주어로 말하고 제주도가 섬이기에 육지로 나가는 게 쉽지 않다는 점만 다루고 있어요.

조기를 ‘조구’라는 사투리로 말하지만, 이것도 제주어가 아닌 전라도 사투리였죠. 또한 제주도에서는 잡히지 않아 타지 않아도 될 오징어잡이배에 오르는 양관식의 모습도 볼 수 있어요. 심지어 지금까지 드라마에서 나온 풍경들은 CG 혹은 제주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촬영한 모습이었죠.

1960년대라는 시대를 보여주지만, 제주도의 4.3사건을 다루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일 거예요. 1947년부터 1954년까지 일어났던 4.3사건으로 희생당한 많은 제주도민이 존재하고 드라마의 시간과 그리 멀지 않기에 충분히 다룰 수 있었다는 평이 있죠. <폭싹 속았수다>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생생하게 4.3사건을 겪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주도는 없는 제주도 배경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되었지만, 아직 남은 회차가 많은 만큼 조금 더 드라마를 지켜보기로 해요. 아쉬움은 있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건 애순의 이야기는 매우 수고한 우리를 토닥여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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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순이 엄마 광례에게 어서 바다에서 나오라고 소리치는 장면이 나와요. 자신의 모든 걸 빼앗기만 하는 애석한 바다가 애순은 지겹죠. 애순이 흘린 눈물만큼 거센 파도가 치는 <폭싹 속았수다>의 제주 바다는 ‘김녕 해변’에서 촬영되었습니다. 처절했지만 그럼에도 이쁜 장면들도 있었던 애순의 삶처럼 아름다운 해변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주도에 가게 된다면, 들러보세요!

📍위치 : 제주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 제주 올레길 20코스에서 촬영